Page 19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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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중도법문이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 • 191
모든 존재는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존재들과의 관계에 의
해 생성되고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있는 것(有)’ 같지만 본성을
따져보면 실체가 없음으로 ‘있음이 아님[非有]’, 즉 본체가 텅 비어 있는
‘공(空)’이다. 여기서 유(有)가 부정된다. 하지만 인연 따라 생성되어 본체
가 공하다고 할지라도 눈앞에는 무수한 존재들이 현상적으로 펼쳐져 있
다. 따라서 세상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도 아님[非空]’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공[無]도 부정된다.
결국 고정불변의 실체인 유도 없고[非有], 텅 빈 공도 없다[非空]. 있음
40)
과 없음이 쌍으로 부정됨으로 이를 ‘쌍차(雙遮)’라고 한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존재는 분명히 있음으로 유도 있으며, 유의 본질을 궁구하
면 자성은 텅 비어 있음으로 공[無]도 또한 있다. 따라서 존재의 실상은
‘공이 아님[非空]’이므로 유(有)가 있고, 그 유는 실체로서 ‘유가 아님[非有]’
으로 공(空)도 있다. 결국 제법의 실상은 공과 유가 모두 드러나 있음으
로 ‘쌍조(雙照)’가 된다.
이처럼 존재의 실상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닌 ‘비유비무(非有非
無)’이면서 또한 있고, 또한 없기 때문에 ‘역유역무(亦有亦無)’라는 성격을
띤다. 쌍차를 통해 있음과 없음을 완전히 부정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과 유가 오롯이 드러나는 쌍조가 된다. 결국 모든 존재는
있음과 없음이 쌍차쌍조의 관계에 있다. 이와 같이 존재의 실상을 꿰뚫
어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래서 천태지의는 “쌍으로 양변을 차단하고
40) 서재영(2016),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