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8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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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 『퇴옹학보』 제18집
너의 배타적 태도를 부정하는 것을 ‘쌍비(雙非)’라고 한다. 나만 고집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너만 내세우는 것도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 양자가 동
시에 긍정되는데 이를 ‘쌍역(雙亦)’이라고 한다. 퇴옹은 이를 두고 “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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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 양쪽을 다 없애버리고 똑같이 다시 살아난다.” 고 설명했다.
둘째는 천태지의가 말하는 쌍차쌍조(雙遮雙照)이다. 이는 백일법문에
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개념이다. 대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만 옳다
는 나 중심적 생각과 행동도 막아야 하고, 반대로 너만 옳다고 고집하
는 생각과 행동도 막아야 한다. 이렇게 쌍방의 변견과 행위를 철저히 막
는 것이 ‘쌍차(雙遮)’이다. 철저히 부정하면 양측이 모두 사라지는 무(無)
가 아니라 오히려 양측이 오롯하게 드러나는 ‘쌍조(雙照)’라는 새 지평이
열리게 된다.
“ 결국은 누구든지 양변을 떠나 쌍차쌍조해서 진여대용이 현전하
면 융통무애하고 변화자재하여 참으로 대자유가 눈앞에 나타나
니,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입니다. 그래서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닌데 생멸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중생의 변
견일 뿐입니다. 중도에 입각해서 보면 불생불멸이니, 이것이 대적
멸(大寂滅)입니다.” 33)
이처럼 나와 너, 이쪽과 저쪽을 동시에 부정하는 것을 ‘쌍차이변(雙遮
32) 성철(2014), 133(상권).
33) 성철(2014), 53(하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