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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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중도법문이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 • 201
이런 상황에서 정화 이후 해인총림이 설치되었고, 방장으로 추대된
퇴옹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할 종단적 책무를 떠안게 된다.
팔종으로 불리는 종파는 각자 자신의 종파가 왜 최고인가에 대한 교판
을 확립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종파불교의 과제가 자파의 우
수성과 차별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면 통불교의 과제는 서로 다른 사상
이 어떤 체계를 갖고, 왜 그것이 하나인지에 대한 교학적 체계가 정립되
어야 한다.
다양한 불교전통을 종합하여 통불교라고만 한다면 혼선이 초래되
고, 지말적인 것이 근간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방장으로서 해결
해야할 당면과제는 불교의 근간부터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
이 불교의 근간인가? 퇴옹은 “화엄종에서 불교를 비판할 때 결국은 쌍
차쌍조하는 중도에 입각해서 이 종(宗)은 어떻고 저 종은 어떻다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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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중도를 벗어나서는 어떤 종도 비판할 수 없습니다.” 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퇴옹은 중도사상을 기준으로 불교사상
을 일미(一味)의 가르침으로 종합한다. 이른바 중도교판의 확립을 통해
불교라는 커다란 자루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 것이다.
퇴옹은 부처님의 깨달음은 중도를 깨달은 것이고, 사성제 팔정도를
설한 것으로 알고 있는 초전법륜 역시 내용적으로 보면 중도사상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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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 ‘중도대선언’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불법의 근본은 중도사상이
며, 중도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했다.
77) 성철(2014), 227(중권).
78) 성철(2014), 145(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