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6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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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 『퇴옹학보』 제18집
여기서 퇴옹은 당대를 풍미(風靡)하는 고는 변견(邊見)으로부터 비롯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퇴옹은 “한쪽에 집착하면 변견(邊見)이라고 합니
다. 변견은 세간의 생멸법이지 불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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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변을 떠나서 중도의 정견을 얻어야 합니다.” 라며 변견은 생멸의 법
이라고 했다. 생멸법이란 극단적 사유인 변견을 의미한다. 변견은 유무
(有無)와 같이 이항대립적 개념으로 작용하고, 그것으로 인해 사회적 갈
등이 빚어진다. 우리나라는 물론 근·현대의 세계사는 이와 같은 양변의
인식으로 인해 모두가 고통을 받았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일어
났고, 우리나라 역시 동족상잔의 전쟁과 이념갈등으로 가혹한 고통을
겪었다.
거시적 안목으로 보면 근·현대 시기는 노화와 죽음 같은 개인적 문제
보다 사회적 고가 더 본질적 고로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고의 근원이
양변에 집착하는 변견이라는 것은 고에 대한 인식을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연민에서 비롯되는 소아
적 고에서 탈피하여 사회적 차원에서 강제되는 거시적 고에 대한 문제
로 인식을 확장한 것이다. 물론 퇴옹은 백일법문에서 사회적 고의 표피
적 양상에 대해 나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도법문의 행간에 담긴 의
미를 살펴보면 고의 사회적 양상을 파악하고 중도라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2) 성철(2014), 105(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