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5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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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중도법문이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 • 205
고의 문제에 대한 관점은 신행현장과 사상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
간에 차이를 보인다. 신행현장에서는 고의 근원에 대한 분석과 접근이
아니라 대중들의 욕구에 토대를 두고 설명하는 경향이 크다. 이때 고는
사고(四苦)와 팔고(八苦)와 같은 현상적 고의 양상이 강조된다. 늙음과 죽
음 같은 중생의 유한성이 고(苦)이고, 욕망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구부
득고(求不得苦)나, 애착의 대상과 헤어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등이 고의
중심 주제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의 원인은 영원한 생명의 결핍,
물질적 재화의 결핍 등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불보살님의 가피에 의해
그런 결핍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 신행의 중심이 된다. 여기서 중생의
한계에 대한 연민에 집중하게 되고, 타력을 통해 그것을 해소하려는 것
으로 귀결된다.
반면 사상적 측면에서 보는 고의 원인은 집착[集]이나 무명(無明)이다.
사성제의 체계로 보면 고의 원인은 집(集)이 되고, 12연기의 체계로 보면
무명(無明)이 된다. 집이 고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연기적 고리에 대한 설
명이라면, 무명은 고의 근원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러나 집이나 무명이라는 것을 통해 남녀갈등, 이념갈등, 지역갈등 등 개
인의 신념에서 비롯되는 고를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집은 지나
치게 개인적 차원의 해석이고, 무명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개념이라 구체
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집은 대립과 갈등으로 비롯되는 사회적 고를 분
석하기에 적절치 않고, 반면 무명은 구체성이 떨어진다. 분열과 갈등으
로 점철된 사회적 고를 분석하고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에 대한 보다 명
확한 진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