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2 - 퇴옹학보 제18집
P. 212
212 • 『퇴옹학보』 제18집
다. 그렇게 모든 분별심을 떠나서 보면 세상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즉,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고통이 생
기면 생긴다고 보고 고통이 없어지면 없어진다고 그대로 봅니
다.” 94)
변견이 생기는 이유는 자기중심의 아상에 의한 분별심과 집착 때문
이다. 그래서 ‘나라는 아견을 고집하는 사량분별을 다 버려야’ 비로소
불이와 중도를 체득하게 된다. 남이 내려놓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아상을 내려놓을 때 대립과 분별은 사라지고 불생불멸의
중도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도 “일체 모든 상을 떠난 것을
95)
부처라고 이름한다.” 라고 했다. 대립과 분별을 해소하기 위해 쌍차, 즉
나와 너의 동시적 해체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래서 중도의 실현으로 가는 첫 단초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백일법문에서 현수법장의 진공사의(眞空四義)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법장은 진공의 네 가지 의미에 대해 첫째는 ‘자기를 버리고 남을 이루
는 뜻’이고, 둘째는 ‘남을 버리고 자기를 드러내는 뜻’이고, 셋째는 ‘자기
와 남이 함께 존재하는 뜻’이고, 넷째는 ‘자기와 남이 함께 없어지는
96)
뜻’ 이라고 단계를 설명했다. 여기서 참다운 공을 이루는 첫 단계는 바
94) 성철(2014), 154(상권).
95) 『금강반야바라밀경』(T8, 750a), “離一切諸相 則名諸佛.”
96) 성철(2014), 136(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