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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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수행과 신심의 상관성 고찰 • 251
嬰과는 엄밀하게 구별된다. 37)
묵조선에서는 이와 같이 깨침의 분상에서의 心과 信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깨침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깨침이란 불성의 성취
임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존의 좌선을 자
신이 그대로 흉내를 내면서 좌선하는 속에서 스스로가 깨쳐 있음을 자
각하고 그것을 좌선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아가서 좌선을 통하여 깨
침이 저절로 드러난다.
항상 광명이 현전하여 깨침을 열어 알음알이의 경계를 초탈한다.
이처럼 될 때 비로소 信은 원래 닦아서 지닐 것이 없고, 일찍이 염
37)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은 곧 話頭가 없이 바로 그 당체를 威音那畔의 일과 空劫已
前의 마음자리로 대신하여 無事寂靜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때문이다. 항상 어디서
나 一行三昧와 一相三昧로 일관해야 할 치열한 구도심을 접어둔 채 현실을 무시한 안이한
모습의 부정이었다. 대혜는 이러한 것을 가리켜 아무것도 모르는 흑산귀굴 속의 귀신들
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묵묵히 좌선하는 그 자체를 망상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비판하
고 있는 것이다. 가령 대혜는 「答李郞中」에서 ‘가장 하열한 무리는 默照無言과 空空寂寂으
로 귀신굴에 빠져 있으면서 그 곳에서 구경의 안락을 구하는 것이다.’(『大慧普覺禪師語
錄』 卷29, T47, 935a-b)고 말하여 몇몇 邪師들에 대하여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 중에는
그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총명하고 지견이 많은 것을 경계하는 말로서 사용하고 있다. 그
러나 여기에서 삿된 견해의 으뜸을 견문각지를 알아서 자기를 삼고 現量境界로써 심지법
문을 삼는 자들이라 하여 오히려 분별망상을 특히 경계하고 있다. ‘삿된 무리들이 사대부
에게 마음을 거두고 고요히 앉아 일마다 관여치 말고 쉬어가고 쉬어가라고 합니다. 이것
은 어찌 분별심을 가지고 마음을 그치게 하며, 분별심을 가지고 마음을 쉬게 하며, 분별
심을 가지고 마음을 활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와 같이 수행한다면 어찌
외도와 이승의 禪寂 斷見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으며, 어찌 자기 마음의 밝고 묘한 작용과
구경안락과 여실히 청정한 해탈 변화의 묘를 나타내겠습니까.’ 「答陳少卿」 첫째 편지(『大
慧普覺禪師語錄』 卷26, T47, 923b)라는 이 경우에 대혜의 지적은 본래 법에는 취사선택
의 분별이 없건만 집착해야 할 어떤 근거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것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