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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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261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이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불교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 한국병합 후 실시된 사찰령으로, 이로써 조선
사찰의 체제 및 조선 승려의 활동에 있어 일대 혁신을 이루게 되었다
고 한다.
한편, 이 책에서는 조선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다. 먼저, 천주교는 오랜 역사 속에서도 병인박해 등과 같은 천주
교도의 희생이 있었지만, 1927년 당시 여전히 조선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종교였음을 언급한다. 그 뒤를 짧은 역사이지만 프로테스탄
트가 이어가고 있는데 천주교보다는 교세가 약해도 거액의 개교자금과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여 그 세력을 뿌리내리고 있음을 언급한다. 이러
한 지적에 있어서는 조선인 신자를 많이 확보한 기독교에 대한 일본불
교의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데, 경성별원 건축 시 교회 건축의 화려함에
버금가는 웅장한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향상회관과 같은
사회사업을 하는 이유도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는 기독교 활동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제2편부터는 진종대곡파의 개교(開敎) 내용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진종대곡파의 포교 시작은 언제부터이며 그리고 어떤 연유로 조
선으로 오게 되었는지, 첫 개항지인 부산을 비롯하여 원산, 인천, 경성,
광주, 목포에서의 상세한 내용 소개와 그 외의 포교소 37곳은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진종대곡파의 조선에서의 첫 포교는 1585년 오쿠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