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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시론 • 49
7식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거나 그 근거에 대해 회의하게 된 이유는 무엇
일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다시 살펴보면 성철스님이 6추에 대해서
도 별로 논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직 아뢰야식의 3세, 그
중에서도 뿌리가 되는 무명업상의 소멸에 논의를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설사 제7식이 설정된다 해도 논의의 대상이 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로지 아뢰야식 3세의 타파만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복잡하고 치밀한 논리가 수행의 실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심층 번뇌〔아뢰야〕와 표층 번뇌〔의식〕의
중간에 말나식을 설정하게 되면 논의가 복잡해져서 말과 생각이 꼬리
를 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논리적 치밀함보다 실
천적 효용성을 택한다.
말나식을 ‘별론하지 않아도 수도상에 관계없다’는 말은 효용성을 중
시하는 성철선의 한 특징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말나식은 나
〔我〕와 나의 것〔我所〕을 집착하는 자아의식을 가리킨다. 이 자아의식의
소멸은 수행의 중요한 실천과제가 된다. 말나식은 무기이지만 자아〔我〕
를 집착하므로 탐진치의 근본이 되는 다양한 번뇌를 생산하기 때문이
다. 「유식삼십송」에서는 이것이 아라한의 멸진정과 출세도(出世道)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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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한다 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아의식의 소멸을 견성으로 이해
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자아가 소멸함에 따라 나와 대상경계의 구
분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이 단계에 의미
47) 『唯識三十論頌』(T31, 0060b), “有覆無記攝, 隨所生所繫. 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