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5년 1월호 Vol.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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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채근을 자주 들었다. 오랜 수행이 바탕이 되어야만 역대
선사들의 경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선가(禪家)
의 지고한 전통이다. 개인적으로 3000배나 간화선 용맹정진
은커녕 좌복에 땀 한 방울 흘려본 적 없는 처지다. ‘교수도
법사도 아닌 일개 재가불자의 선어록 해설을 누가 들어주기
나 할까’라는 계급적 열등감도 부정할 수 없는 벽이다.
그러나 독서라는 관점에만 집중하면 응어리는 의외로 쉽
게 풀어진다. 하늘 아래 모든 글월들은 읽으라고 내놓인 것
이다. 저자는 있겠지만 주인은 없는 구조다. 시장과 도서관
에 널린 책들을, 자기만의 취향으로 즐기거나 제 나름의 사
유로 곱씹으면 그만이다. 독서는 기술이 아니라 취미라는 상
식을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선어록도 한낱 책이며, 차
근차근 정독하고 깜냥에 발맞춰 독해하면서 주관과 객관의
간극을 줄여 나가면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다만 읽음이라는 행위와 읽음에 대해 표현하는 행위는 엄
연히 다른 맥락임을 잘 알고 있다. 독서는 소비일 수 있으나,
비평은 소비여선 안 된다. 일관되게 논리적이어야 하며 가일
층 객관적이어야 한다. 아름답다면 금상첨화다. 이는 원고료
를 받아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덕목들을 지지
할 수 있는 최후의 버팀목은 진정성이라고 믿는다. 나는 스
님이 아니지만, 내 삶에 충실했다.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어렵기로 따지면 『종용록(從容錄)』
이 압권이다. 저본은 『굉지송고(宏智頌古)』. 중국 북송(北宋)
시대를 살았던 굉지정각(宏智正覺) 스님이 이름난 선사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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