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5년 1월호 Vol.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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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첫머리에 부처님의 일화를 넣은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는 없다.
백추(白椎)란 추를 쳐서 법회가 열릴 것임을 대중에게 알
리는 일이다. 문수(文殊)는 부처님의 제자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그는 ‘백추’라는 한 번의 행위 안에 불교
의 진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공언했다. 부처님이 자리에
서 얼른 내려왔다는 건, 문수의 입장에 동의했다는 것을 의
미한다. 부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작 종소리 하나
로 법회가 마무리된 격이다.
초등학교 시절 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애국조회로 시작됐
다. 1시간을 서 있어도 애국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질
나쁜 마이크에서 터져 나오는 훈화는 으레 학생들의 감동이
아니라 교장의 체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말도 오래 들으면 소음이 된다. 말이 없어도 해는 뜨고 꽃은
핀다. 부처님의 침묵은 해가 뜨고 꽃이 피는 것 이상의 불법
은 없음을 가르친다. 말은 삶을 빛나게 해주지만, 그 빛에 눈
이 멀 수도 있다. 가장 보잘 것 없으나 가장 절대적인 음식
은 맹물이다. 공기는 비어 있으나 꽉차있다.
제1칙에 대한 시중(示衆)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문을 걸어 닫고 잠만 자는 것은 상상기 (上上機)를 인도하는
길이요, 이리저리 둘러보거나 하품을 하거나 소리를 꽥 지르
는 것은 중하(中下) 근기를 위한 방편이다.” 눈이 부시게 착
한 마음이라도 무심 (無心)에 비길 바가 못 된다. 악한 마음
을 비난하고 바로잡아주려다, 또 다른 착한 마음 앞에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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