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5년 1월호 Vol.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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叢書)>가 20권쯤 꽂혀 있다. 조사선 (祖師禪)의 대중화를 목적
으로 편찬된 선어록들의 묶음이다. 밥벌이의 피로와 위선에
지칠 때마다 몇 장씩 들춰본다. 마음 다잡자고 읽는 책이지
만, 달콤한 교훈이나 솔깃한 처세술 따위는 담겨 있지 않다.
극단적인 비약과 여백의 언어는 웬만한 세상사보다 복잡하
고 어이가 없다.
선어록은 부담스러운 텍스트다. 우선 읽기 자체가 녹록
치 않다. 대부분 길어야 너댓마디를 넘지 않는 대화 형식이
지만, 외려 너무 짧다는 게 문제다. 독자의 이해를 돕는 설명
도, 이야기의 재미를 북돋우는 서사적 장치도 없다. 딱딱하
고 건조하며 밋밋하고 무정하다. 그럼에도 그토록 단조롭고
까칠한 글줄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어찌 보면 정
말 짧아서이다. 가장 간명한 어법으로 존재의 의미를 단박
에 그리고 명쾌하게 일러준다.
사실 어록에서 선사들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은 분량만
큼이나 단출하다. 일언이폐지하면, ‘그냥’ 살라는 것이다. 당
장의 꿀맛 같은 행복도 인연이 다 하면 속절없이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치로 끔찍한 불행이란
것도 종국엔 한 조각 거품으로 오므라들리라는 것. 빛은 어
둠의 절반이고 삶은 죽음이 먹다 남긴 찌꺼기라는 것. 도에
넘치게 욕심내지 말고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며 중심을 잡으
라는 것 등속의 잠언은 귓가에 오래 남는다.
물론 이렇듯 호기롭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쪽엔 켕기는
구석이 있다. 선어록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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