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고경 - 2015년 4월호 Vol.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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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기지개를 켜며 따사롭게 가야산을 품어 주던
                 날. 해인사 금강굴 역시 넉넉하고 포근했다. 비구니 선사(禪
                 師) 혜춘 스님이 후학들을 제접했던 보현암과 눈을 맞추고

                 있는 금강굴에는 또 다른 비구니 불필 스님이 주석하고 있
                 다. 불필 스님은 안거 때에는 울산 석남사 선원에서 대중들
                 과 함께 정진하고 산철에도 금강굴에서 수행을 계속한다. 그
                 러고 보니 혜춘 스님과 불필 스님 모두 성철 스님을 만나 수

                 행자의 길에 들어섰고, 평생 동안 오로지 정진만 한,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을 지닌 스님들이다.
                   팔순을 앞둔 노스님이 벌써 몇 시간째 가야산과 금강굴,
                 성철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고등학생 때 할머니와 고모를 따라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
                 갔어요. 길을 잃어 산기슭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어렵게 어렵
                 게 천제굴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가 싸들고 간 음식과 과일
                 을 보자마자 큰스님께서는 저와 고모한테 ‘이것 모두 들고 가

                 서 저 산 아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오라’고 하셨습
                 니다. 항상 당신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셨던 것이죠.
                   큰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눴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영원한 행복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서 저에게 ‘어두운 밤에 흰 눈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또 여
                 러 화두에 대한 말씀도 하셨고요. 제가 출가하는 데 결정적
                 결심을 하게 된 곳이 천제굴입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열반 전에는 큰스님께서 또 저에게 말

                 씀하셨습니다. ‘니, 내가 가면 내 같은 사람 또 만날 줄 아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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