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5년 4월호 Vol.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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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았다. 대중은 일언반구 말을 못했고 고양이는 두 토막
이 났다.
동당(東堂)과 서당(西堂)은 주지에서 물러난 원로 스님들
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수행과 전법에 일가견을 이룬 어른들
이 사는 곳이니, 드나드는 발길도 따르는 무리도 많았을 법
하다. 한편으론 고인 물은 썩기 쉽고, ‘사람’에게 ‘사람들’이 몰
리면 도당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또한 한낱 고양이 한 마리를 갖자고 서로 으르렁대지는 않
았을 듯싶다. 절 안의 패권싸움 또는 누가 더 잘났느냐는 법
통 논쟁이었을 게 뻔하다. 전체 대중을 지도하는 방장(方丈)
의 입장에선 문도들의 갈등이 안타깝고 고까웠을 것이다. 그
래서 일도양단의 각오로 칼을 뽑아들었다. “바로 이르라.”는
건 동당이든 서당이든 자신들이 왜 고양이를 가져야 하는지
설득해보라는 주문일 터.
하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대장’ 앞에서 양쪽 모두 말문이
막혔다. 더구나 셈에 밝은 자들은 샘이나 낼 뿐이다. “고양이
대신 내가 죽겠다.”며 결연하게 나서는 이도, “공연히 노망 피
우지 말라.”며 호기롭게 대드는 이도 없다. 하다못해 “잘못했
다.”고 꼬리를 내리면 고양이는 무사할 수 있었다. “불쌍한 짐
승을 살려 달라.”는 한마디조차 인색하다. 말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말은 못하는 ‘찌질이’들이다.
고양이를 일종의 화두로 본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도 가능
하다. 깨달음은 누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 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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