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16년 1월호 Vol.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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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자에겐 그 하루가 100년과 같다. 죽음 앞에서 삶의 길이
는 무의미하다. 외려 죄 지을 일만 많아지고 추한 꼴만 보이
기 십상이다. 오직 삶의 내용이 중요할 뿐인데, 이마저도 해석
하기 나름이다. 돈을 중히 여기는 이는 생전의 재산에만 눈
독을 들일 것이고, 인맥을 높게 치는 이는 살아서의 그가 벌
여놓은 위선에만 관심을 둘 것이다. 건강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끔 잔병을 치르다가 중병으로 끝내는 게 인생이다. 실체는
없고 형상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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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칙
위산의 업식(潙山業識, 위산업식)
위산영우(潙山靈祐)가 앙산혜적(仰山慧寂)에게 물었다. “모
든 중생은 다만 업식 (業識)이 끝없이 망망해서 가히 의거
할 근본이 없거늘 그대는 어떻게 증험 (證驗)하겠는가?”
그때 어떤 스님이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앙산이 그에게
“스니임….” 하고 부르자 스님이 돌아봤다. 앙산이 위산에
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업식이 끝없이 망망하여 가히 의
지할 근본조차 없는 것입니다.”
위산이 일렀다. “정답이다.”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단 겉으로 드러난 행색에서
온다. 삭발한 머리와 잿빛 승복의 사내를 보면 사람들은 그
2016. 01.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