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6년 1월호 Vol.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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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스님이라고 인식한다. 또한 그들이 스님으로 봐줌으로써
                그는 스님이 된다. 아울러 스스로 ‘스님’임을 지각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가 스님으로 살아왔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

                문이다. 양복 입은 스님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렵고, 치매
                에 걸린 스님은 남들에게만 스님이다. 곧 밖으로 나타나는 형
                상과 안으로 떠올리는 표상은 정체성을 떠받치는 양대 보루
                라고 할 수 있다.

                  업식이란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업이 만들어낸 의식을 가리
                킨다. 과거에 저지른 말과 생각과 행동을 기반으로 현재의 삶
                을 규정짓는 마음 작용이다. 예컨대 ‘분수에 맞게 처신해라.’
                ‘내 경험상 이게 맞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워야지.’ 등등. 사

                람은 지금의 삶이 그냥저냥 평작 수준이라면, 살아온 대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스님은 스님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계속해
                서 살아가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자긍심을 유지한다. 결국 품
                위라는 것도 하나의 기득권이다.

                  차림새가 단정한 스님이 지저분한 스님보다 훨씬 큰스님처
                럼 보인다. 그리고 깨끗한 스님은 깨끗하지 못한 스님을 타박
                하면서 자신의 고결함에 뿌듯함을 느낀다. 선을 긋고 선의 바
                깥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는 건, 스님뿐만 아니라 모든 기성세

                대의 관행이다. 기성세대를 보고 배운 미래세대에게도 공통
                적인 습성이다. 자기를 일정하게 구속해야만 삶의 안전과 평
                화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속여야
                하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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