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고경 - 2016년 8월호 Vol. 40
P. 15
모습을 보여준다. 몸을 공중에 날려 스스로 불을 붙였고, 화
장이 끝난 다음 하늘에서 사리가 쏟아져 땅에 떨어지면 이
것을 제자들이 수습하여 사리탑을 만들었다는 형식을 취하
고 있다. 기록자는 중국인이지만 대상자가 ‘인디언 (인도사람)’
이니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중국인에게는 기존 정서
상 그럴 수가 없었다. 중국선종의 1조인 달마 대사는 두 문화
권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웅이산
(熊耳山)에 매장했다고 기록했다. 3년 후 관 뚜껑을 열어 보니
짚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면서 매장임을 다시 한 번 강조
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화장법을 도입하려는 노
력이 뒤따랐다. 『보림전』 권8 기록에 의하면 3조 승찬 대사는
매장법과 화장법을 동시에 수용한 절묘한 장례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봉분을 개장하고 관을 열었다. 장작을 쌓고 화장을 했
다. (於是開墳開棺 積薪發火)”
매장한 뒤 3년 후에 다시 화장을 통해 사리탑을 세우는 방
식으로 두 문화권의 장례법 충돌을 중도적으로 극복할 수 있
었다.
원철 스님 ● 조계종 포교연구실장이며 해인사 승가대학장과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을 역임했다.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의 연구·번역·강
의로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면서, 일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로서
주변과 소통하고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않다』외에 몇 권의 산문집과 번역
서를 출간했다.
2016. 0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