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16년 8월호 Vol.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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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교계 일
                 각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붓다로 살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복
                 을 비는 수동적 신앙을 넘어 스스로 붓다로 살아가는 새로운

                 신행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는 가장 불교적인 신행운동이자,
                 가장 높은 수준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생이 곧 부처’라는 것에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도 있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은 불이사상

                 에서 나온 것이고, 불이는 중도의 다른 표현이다. 용수보살이
                 중도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여덟 가지 중도 가운데 첫 번째
                 가 바로 불일불이 (不一不二)이다. 따라서 불이가 담고 있는 온
                 전한 의미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일불이 중에 불이의 측면만을 따와서 A와 B가 똑같다고
                 생각한다.
                   유념할 것은 불이와 함께 한 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불일
                 (不一)이라는 것이다. 불일불이의 관점에서 보면 부처와 중생

                 은 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것도 아니다. 부처와 중생
                 은 동일한 측면도 있지만 그 둘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 엄
                 청난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이는 불일불이의 한 측면
                 으로써 본질적 같음과 현상적 차이를 모두 포괄한 개념이지

                 부처와 중생이 같고, 중생이 부처와 같다는 일방적 등식은 결
                 코 아니다. 불이를 그렇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중도
                 가 되고, 반쪽짜리는 차별과 대립을 낳는 새로운 변견이 되고
                 만다. 부처님은 맹목적 단견 (斷見)도 부정하셨지만 무조건적

                 인 상견 (常見)도 부정하셨다. 중생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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