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6년 8월호 Vol.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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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상견이며, 그것은 단견 못지않은 변견일 뿐이다.
그렇다면 부처와 중생이 같다는 불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원적 입장, 이 (理)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일례로 『반야심경』은 철저히 불이의 관점에 입각해 있다. 그
래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현상적 차별이 사라진 이와 같은 불이는 어디까지나 ‘시고공
중(是故空中)’, 즉 ‘모든 차별상이 사라진 공의 세계’에서 그런
것이지 중생의 현실이 곧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부처와 중생
의 차별이 사라지고 진정한 불이가 되려면 관자재보살처럼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여 공(空)의 세계, 진제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차별이 사라진 공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 이 (理)의
세계가 아니라 사(事)의 세계에서 보면 부처와 중생은 불이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같지 않은’ ‘불일’의 관계가 된다. 부처님
은 모든 번뇌를 제멸한 반면 중생들은 치성한 욕망의 불길에
휩싸여 살아간다. 부처님은 자비로 모든 중생을 섭수하지만
중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남을 짓밟으며 심지어 잔인한 살인
과 약탈까지 서슴지 않는다. 불 세계는 욕망이 사라진 열반
의 세계이지만 중생의 세간은 집착과 욕망에 점철된 고해의
바다이다. 이와 같은 엄연한 차이를 덮어놓고 중생이 곧 부처
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경계하셨던 변견을 옹호하는 것
과 다르지 않다. 부처님도 이와 같은 중생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출가하셨고, 승가를 통해 답을 모색하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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