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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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조비 때부터였다. 이후 선양은 7백 수 십 년 동안 왕조교체에 필요불가
결한 형식으로 준수되었다. 960년 송(宋. 960∼1279) 태조 조광윤이 7세에
즉위한 후주(後周. 951∼960)의 마지막 왕 공제恭帝의 양보로 제위에 오른 것
을 끝으로 선양은 중국 역사에서 사라진다.
한편, 서기 234년 음력 8월 23일 촉의 승상 제갈량(181∼234)이 한중漢
中의 오장원에서 병사하고, 249년 위나라 장수 사마의(179∼251)가 쿠데타
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뒤 그의 아들 사마사(209∼255)·사마소(211∼265)
가 연이어 입지를 강화하자 삼국의 정치 판도는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
다. 그 와중인 263년 촉이 망하고, 265년 서진(西晉. 265∼316)이 위를 대체
했다. 마침내 280년 서진이 오를 평정하자 삼국은 다시금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나 통합은 분열의 새로운 서막에 불과했다.
무제 사마염(司馬炎. 236∼265∼290)이 병으로 죽고 적자嫡子인 혜제 사마충
(司馬衷. 259∼290∼306)이 즉위한 뒤인 원강元康 원년(291), 대신 가충(賈充.
217∼282)의 딸이자 “역사상 가장 못생긴 황후”로 유명한 황후 가남풍賈南
豊이, 당시의 권력자 양준을 척살하고 권력을 잡았다. 여기서 촉발된 권력투
쟁은 광희光熙 원년(306) 동해왕 사마월(司馬越. ?∼311)이 하간왕 사마옹司馬
顒을 죽이고 그해 즉위한 회제 사마치(司馬熾. 284∼306∼313)의 보정補政이
되어 실권을 장악함으로써 일단 끝난다. 사마司馬씨 여덟 왕들 사이에 벌
어진 내전을 소위 ‘팔왕의 난’(291∼306) 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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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여남왕汝南王 사마량司馬亮, 동해왕東海王 사마월, 하간왕何間王 사마용, 제왕齊王 사
마경司馬冏,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潁,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 초왕楚王 사마위司馬瑋 등이 팔왕이다.
이들은 모두 사마의 중달의 직계 후손들이거나, 중달의 형제들의 아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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