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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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으로 되갚았다.


             흉노계 국가의 소멸




             이런저런 상황이 전개되던 318년 유연이 세운 한漢국에 변란이 일어났
           다. 동요 끝에 한국은 분열됐다. 그해 10월 유요는 장안에서 황제로 즉위
           했다. 국호도 조趙로 고쳤다. 석륵 역시 319년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나라

           를 세워 독립해 조趙를 세웠다. 전자를 전조(318∼329), 후자를 후조(319∼351)

           라 불러 구별한다. 두 영웅이 대립하던 와중에 328년 석륵이 유요를 패사敗
           死시키고,  328년  전조를  무너뜨렸다.  석륵에  이어  등극한  석홍(石弘.
                                                                  9)
           314∼333∼335)을 제압한 석호(石虎. 295∼334∼349)는 스스로를 천왕 이라 칭
           했다. 그러나 빠르게 쇠망의 조짐이 나타났다. 349년 석호가 병사한 뒤 내

           분이 일어나 서로 싸우다 351년 후조는 망하고 말았다. 감숙성 일대의 하
           서 회랑 지역에 흉노족 저거沮渠씨가 세운 북량(北凉. 401∼439)은 여전히 존
           재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중원의 흉노계 국가들은 내분으로 4세기 중

           엽 스스로 소멸되고 말았다.

             노예적 상태에서 탈출해 국가를 건립하며 승승장구하던 흉노족이 불과
           반세기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한 까닭은 무엇일까? 종족의 종실·
           왕족들이 군사권을 나눠 갖는 ‘종실적宗室的 군사봉건제軍事封建制’가 흉노

           족 멸망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






           9)  천왕이란 봉건제도가 행해진 고대 주周나라 왕의 지위를 나타내는 말. 석호가 황제라는 칭호 대신 천

             왕을 사용한 것은 그의 기반과 권력이 부족적 결합에 의해 지탱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와카
             쓰 요시오 지음·임대희 옮김, 『중국의 역사-위진남북조』, 서울:혜안, 2004, pp.317∼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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