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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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총(劉聰. ?∼310∼318)이 즉위했다. 그는 유요(劉曜. ?∼318∼329)와 흉노계
            인 갈족 석륵(石勒. 274∼319∼333)에게 서진을 더욱 거세게 공격하도록 명했
            다. 동해왕 사마월은 이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간신히 사방에서 4만여 명

            을 긁어모아 허창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마월이 멋대로 군사를 움

            직이는 것에 화가 난 회제는 그를 토벌하라는 밀조를 내렸다. 이를 들은 사
            마월은 흥분한 나머지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져 죽었다. 죽기 전 청담淸談을
            논하던 당대의 명사名士 태위 왕연(王衍. 256∼311)에게 후사를 부탁했다. 공

            리공론을 즐기던 왕연은 서진 왕조를 지킬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어떻

            게든 도망갈 궁리만 찾았다. 동해왕 사마월이 죽자 그의 시체를 귀장歸葬시
            킨다는 명목으로 황제를 남겨둔 채 귀족 등 10만 여명을 이끌고 수도 낙양
            을 떠났다. 소식을 들은 석륵이 이들을 급습해 큰 힘 들이지 않고 승리했

            다. 왕연 등 서진 종실 48명을 모두 사로잡았다. 311년 음력 4월에 벌어진

            일이다.
              한 달 뒤인 서기 311년 음력 5월, 유요는 낙양을 함락시켰다. 영가永
            嘉 6년(312) 포로가 된 회제와 황후 양씨는 평양으로 압송됐고, 낙양은 불

            에 타 잿더미가 됐다. 영가(307∼313) 연간에 벌어진 이 사건을 “영가의 난

            亂”이라 부른다. 평양으로 압송된 회제는 313년 정월 베풀어진 연회에서
            흉노 황제에게 술을 따라야만 했다. 이런저런 치욕을 당하다 결국 그 해

            2월 1일 회제는 살해됐다. 낙양에서 간신히 장안으로 도망친 사마업司馬
            鄴이 313년 음력 4월 27일 장안에서 즉위했다. 서진의 마지막 황제 민제

            (愍帝. 300∼313∼317)다. 그러나 그 다음 달에 유요의 군대가 들이 닥쳤다.
            316년 11월 11일 민제는 결국 항복했다. 18일 민제는 유총 앞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렸다. 온갖 치욕을 겪던 민제 역시 317년 12월 20일 18세

            의 나이로 살해되었다. 흉노족들은 그동안 한족에게 당했던 설움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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