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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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가 있을 때 이 제도는 힘을 발휘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격렬한
내분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漢·전조·후조의 분열과 쇠망을
보면 하나같이 종족 내부의 분란이 주요한 원인 이었다. 한漢의 경우 황제
유화(형)와 대선우 유총(동생) 형제간의 갈등, 유총의 아들 유찬과 유총의 아
우 대선우 유예 사이의 다툼; 후조의 경우 황태자 석홍과 실력자 석호 간
의 갈등 역시 종실적 군사봉건제 때문에 생긴 구조적 갈등이었다. 실력과
능력 보다는 ‘종족적 혈연주의’에 기초를 둔 이런 구조 아래에선 황제 권력
10)
이 불안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다른 원인은 ‘종족중심주의宗族中心主義다. 흉노족들이 나라를 세웠어
도 인구의 대다수는 한족漢族일 수밖에 없다. 흉노족 등은 소수인데다 게
다가 여러 소수민족들로 나눠졌기에, 그들의 통치기반이 탄탄해지기는 아
무래도 쉽지 않다. 중국화를 지향하는 한화정책漢化政策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어설픈 한화정책은 종족간의 분열을 불러오고, 분열
은 곧바로 종실 실력자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 연결된다. 자연히 국력
을 한 곳에 모을 여력이 없어진다. 그 틈을 노리고 다른 민족이 치고 들어
오면 나라는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설익은 한화정책도 문제지만, 흉노족 등이 세운 국가들은 대개 한화정
책에 소극적이었다. 한화정책은 지배세력이 장악할 수 있는 권한과 이권
의 일부를 한족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공적인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
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들의 대체적인 속성. 특히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민
10) 종실적 군사봉건제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할 것. 박한제 지음, 『박한제 교수의 중국 역사기행
1-영웅시대의 빛과 그늘』, 서울:사계절, 2003, p.218; 가와카쓰 요시오 지음·임대희 옮김, 『중국
의 역사-위진남북조』, 서울:혜안, 2004, pp.31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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