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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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을 장악한 그가 355년 죽고 그의 셋째 아들 부생(苻生. 334∼355∼357)이
           뒤를 이었다. 그는 상상이상의 폭군이었다. 357년 신변의 위협을 느낀 부
           건의 조카 부견(苻堅. 338∼357∼385)이 정변을 일으켜 부생을 제거하고 천왕

           에 올라, 전진(前秦. 350∼394)의 국정을 일신했다.

             부견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해준 바로 그 황
           제이다. 고려시대 김부식(1075∼1151)이 편찬한 『삼국사기』권18에 전하는
           기록이다.




                 “(고구려)소수림왕 2년(372) 여름 6월, 진왕 부견이 사신을 파
                 견해 부도와 순도스님, 불상과 경전도 보내왔다. 왕이 사신

                 을 보내 토산물로 감사를 전했다. … 4년(374) 아도스님이 (고
                 구려에) 왔다. 5년(375) 봄 2월, 처음으로 초문사라는 사찰을

                 세워 순도스님을 머무르게 했다. 다시 이불란사를 건립해 아
                 도스님을 모셨다. 이것이 해동 불법의 시작이다.”
                                                           11)


             부견은 또한 십육국의 여러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명군名君으로 평가 되

           는 인물이기도 하다. 『진서晉書』권113 「재기載記제13 부견苻堅 상上」에 주목
           할 만한 기록이 있다.



                 “영가永嘉의 난 이래 학교를 볼 수 없었다. 부견이 즉위한(及







           11) “ 小獸林王, 二年夏六月, 秦王苻堅, 遣使及浮屠順道, 送佛像經文, 王遣使廻謝, 以貢方物. … 四年,
              僧阿道來. 五年春二月, 始創省門寺, 以置順道. 又創伊弗蘭寺, 以置阿道, 此海東佛法之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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