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P. 45
堅之僭) 이후 유학을 매우 중시했다. 왕맹은 풍속을 정돈하고,
정무를 깨끗하게 살폈으며, 학교가 차차 일어났다. 관롱(關
隴. 섬서성 일대) 지역은 잘 다스려지고 편안하며, 백성들은 즐
거이 생업에 힘쓰게 됐다. 장안에서 여러 지방에 이르기까지
도로 양쪽에 회화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었고, 이십 리에 정
자를 하나씩, 사십 리에 역참을 하나씩 설치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정자에서 쉬고 물자를 공급받았으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길에서 자유롭게 거래했다. 백성들이
찬탄의 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장안의 큰 길에 버드나무와
회화나무를 심었도다! 밑에는 붉은 수레가 달려가고, 위에
는 봉황들이 살도다. 영웅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백성들을
인도해 주시네!’”
12)
부견이 제위帝位에 오른 것에 대해 “분수 넘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가
담긴 한자 ‘참’僭자를 쓴 점에서 다른 민족에 대한 한족 역사가의 편견을 확
인 할 수 있지만, 한족이 편찬한 역사서에 다른 민족 출신의 황제를 이렇
게 높이 평가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부견이 안으로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
고, 밖으로 화북지방을 통일해 양자강 이북에 만연했던 전란을 잠재운 공
을 높이 평가한 탓이리라. “영웅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백성들을 인도해 주
12) “ 自永嘉之亂, 庠序無聞, 及堅之僭, 頗留心儒學, 王猛整齊風俗, 政理稱擧, 學校漸興. 關隴淸晏, 百
姓豊樂, 自長安至於諸州, 皆夾路樹槐柳, 二十里一亭, 四十里一驛, 旅行者取給於途, 工商貿販於道.
百姓歌之曰: ‘長安大街, 夾樹楊槐. 下走朱輪, 上有鸞棲. 英雄雲集, 誨我萌黎.”
[唐]方玄齡 等 撰, 簡體字本二十四史13 『진서晉書』卷113「載記第13」, 北京:中華書局, 1999, p.1939.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