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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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쯤 걸어가 친구 집에 도착했다. 친구가 근처 십리 이내에
집이 없다고 말했다. 육운은 비로소 느끼는 바가 있었다. 어제
밤 머물렀던 곳을 찾으니 바로 왕필王弼의 무덤이었다. 육운은
본래 현학玄學을 공부하지 않았는데, 그 때부터 『노자』의 내용을
11)
토론함에 대단한 성취가 있었다.” (강조는 필자)
「육운전」에서 보듯이 위진현학은 노장철학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현학을 ‘노장老莊 혹은 현종玄宗·현허玄虛의 학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남조 양梁나라 때부터 수隋나라까지 살았던 안지추(顔之
推. 531~591)가 지은 『안씨가훈』권제3 「면학勉學」제8에 주목할 만한 기록이
있다.
“『노자』·『장자』는 대체로 참[眞]을 온전히 보존하고 근본 성품을
기르며, 외물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싫어하는 내용들이다. …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은 이런 현학을 ‘근본적인 가르침[玄宗]’으로
삼아 이어가며 서로 과장하고 숭상했으며, ‘경치에 붙은 형체와
풀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景附草靡]’을 대하듯이 했다. 신농神濃씨
와 황제黃帝의 교화가 모두 자신의 몸에 있다고 여겼으며, 주
공周公과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버렸다. 그런데 하안은 조상曹
爽과 무리를 짓다 (사마의에게) 살해 됐으니 이는 권세의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이다. 왕필은 남 비웃기를 잘해 사람들이 그를 질
11) [唐]方玄齡等撰, 『晉書』卷54「陸雲傳」, 北京:中華書局, 1999, p.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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