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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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철학과 공자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고 본질적으로 같다는 완선자의
말은 위진현학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위진현
학이 주요하게 다룬 문제들이 지적知的놀이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인용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전후 맥락이 생략된 채 전하는
단편적인 기록만으로 전반적인 상황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몇
마디 말에 관리나 친구가 됐다는 점에서, 현학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기보
다는 ‘관념적인 말놀이’만 즐겼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대화에 등장하는 왕이보王夷甫 즉 왕연은 서진 영가 5년(311) 동해
왕 사마월이 죽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원수元帥로 추대됐으나 석륵과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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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에서 패해 포로가 된 바로 그 사람이다. 명사名士로 이름이 쟁쟁했던
왕연이었기에 석륵은 그를 만나고 싶었다. 석륵이 그에게 진나라의 사정
을 물었다. 왕연이 말하길 자신은 국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등 핑계로 일
관했다. 오히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석륵에게 황제가 될 것을 권했다. 화
가 난 석륵은 그를 칼로 죽이지 않고 밤에 사람을 보내 담을 무너뜨려 압
사壓死시켰다. 죽음에 임해서야 왕연은 탄식했다. “아아! 내 비록 (능력이)
옛 사람들에 미치지 못하나, 만약 ‘내용 없고 허무한 것’을 숭상하지 않고
전력을 기울여 나라를 바로잡았더라면 오늘 이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
리라!”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 지적知的 놀이로 즐긴 ‘공허한 말’의 폐단
15)
을 왕연은 죽을 때 비로소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아무튼, 본本·말末과 유有·무無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룬 현학자들 대
14) 이에 대해서는 『고경』제63호 「승조와 조론 2」(p.39)를 참조할 것.
15) [唐]方玄齡等撰, 『晉書』卷43「王衍傳」, 北京:中華書局, 1999, p.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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