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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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발전한 학문이 경학經學인데, 현실 정치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삼
           고자 유교 경전 속의 이론을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문자의 의미를
           해석하는 훈고訓詁를 위해서가 아니라 문장에 담긴 큰 뜻[大義]을 밝혀내려

           는 학문적 작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동중서가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의거해 제안
           한 “하늘과 인간은 서로 통하며 반응한다.”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과 전한
           말부터 시작되어 후한이 망할 때까지 통치자들이 창도倡導한 일종의 미래

           예언술預言術인 참위설懺緯說은 점차 속화俗化되어 경세치용의 역할을 담당

           할 수 없게 변해갔다. 황당하면서도 번잡한 신비주의 학설로 둔갑해 버렸
           다. 후한 말기 유가사상의 쇠퇴가 두드러지자 법가 음양가 도가 등의 사상
           이 유가독존儒家獨尊의 틀을 뚫고 세력을 얻었다. 한漢·위魏교체기에 유가

           의 지위를 이은 것이 도가사상 즉 노장사상이었다.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정제된 노장사상으로 명교(유교의 삼강오륜 등)를 새롭게 해석하는 현학은 이
           러한 사상적 흐름 속에서 출현했다.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이 청의淸議였다. 부패한 정치 현실을 비판하며 사

           인士人 계층 사이에 형성된 정치적 여론을 청의라 한다. 청의의 형성은 한

           나라의 관리 선출방식과 관련이 있다. 당시의 관리 선출은 지역사회 사
           인士人들의 인물평[鄕論]을 참작해 중앙정부 고관들이 인재를 천거했다. 이
           것이 ‘지방에서 추천된 인재 가운데 선택한다’는 향거리선鄕擧里選. 특히 후

           한 명제(28~57~75) 이래 유교는 국교였기에 지방의 우수한 학도들을 명

           경明經 혹은 효렴孝廉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정부에 등용했다. 그 결과 후한
           말기에 이르러 지방과 중앙에는 유교 지식인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
           었다. 이들은 인물평론 등을 통해 자연스레 환관정치의 부패상을 비판하

           며 자신들의 여론을 만들어나갔다. 그런데 환관의 사주를 받은 환제(桓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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