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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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은 고위관료이거나 당시를 대표하는 학자들 즉 명사名士들이었다. 그
            들은 존재의 근본 등을 탐구하며 ‘세상의 일[世務]’과 ‘세상의 사물[世物]’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맑은 담론[淸談]’을 추구했다. 청담을 통해 현학가들은 노

            장철학이 중시한 ‘무위자연’(自然. 만물 존재의 근거 즉 도道 혹은 본체本體. 우주만

            물의 자연 질서. 이상세계)과 공자의 가르침인 명교(名敎. 유교가 중시하는 사회적
            준칙. 인간 사회의 도덕질서. 현실세계)를 일치시킴으로써 이상과 현실을 합리적
            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말해 노장철학을 기본으로 삼아 유가와

            도가의 조화를 꾀하고, 자연과 명교를 회통시키려 한 철학사조가 바로 위

            진현학이라 할 수 있다.       16)


              경학經學에서 현학玄學으로




              위진현학도 다른 사상들처럼 시대적 변화와 요청의 산물이다. 전한 무
            제(기원전156~기원전141~기원전87) 이래 유학은 정치 현실을 지배해온 중심
            사상이었다. 『한서漢書』권6 「무제기 제6」에서 반고班固는 “탁월한 식견으로

                                                            17)
            잡가雜家의 학설을 내쫓고, 육경六經의 지위를 확립했다.” 며 무제를 높이
            평가했다. 『한서』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에서도 “동중서(기원전179~기원전
            104)가 대책을 올려 공자의 학문을 높이고, 백가百家의 주장을 억제하고 물
            리쳤다.” 며 유학이 무제 이래 주된 사상이 됐음을 지적했다. 한나라 당시
                   18)







            16)  湯一介著, 『郭象與魏晉玄學』(第三版), 北京:北京大學出版社, 2009, p.10; 張岱年主編, 『中國哲學大辭
              典』, 上海:上海辭書出版社, 2014, p.155.
            17)  [後漢]班固撰, 『漢書』卷6「武帝紀第六」, 北京:中華書局, 1999, p.150.

            18)  [後漢]班固撰, 『漢書』卷56「董仲舒傳」, 北京:中華書局, 1999, p.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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