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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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이야기 4
관조적 의식으로서의 증자증분
정은해 | 성균관대 초빙교수·철학
1. 인간의 삶은 관계라 한다. 관계그물망 속에서 인간의 삶이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 친구들
과의 관계, 사제 사이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업무와의 관계, 티브이와의
관계, 술이나 담배와의 관계, 이러한 관계들을 제외하면, 삶에 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물론 반론이 전혀 없을 수 없다. 인간만이 그러한가? 다른 동식물도 그
렇지 않은가? 집에서 키워지는 반려견의 경우, 이것의 삶도 관계그물망 속
에서 전개되지 않는가? 견주라고 불리는 부모와의 관계, 집안의 아이들과
의 관계, 산책할 때 이따금씩 보는 이웃집 친절한 강아지와의 관계, 먼 집
사나운 개와의 관계, 풀 냄새와의 관계, 땅 냄새와의 관계, 심심할 때 물어
뜯는 장난감과의 관계, 물이나 먹이와의 관계, 이러한 관계들을 제외하면,
반려견의 삶에 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시인 서정주(徐廷柱, 1915~2000)는 「국화꽃 옆에서」라는 시에서 국화가 맺
고 있는 관계그물망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소쩍새와의 관계, 천둥과의 관
계, 누님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가 국화로 하여금 국화꽃을 피워내게 했다
는 것이다. 이쯤에 이르면, 독자들은 내심 말하리라. 옳거니, 연기가 법계
를 이루니, 법계는 곧 인연일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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