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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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앞서 말해진 모든 관계는 수평적 관계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직적 관
            계도 있다. 수평적 관계그물망이 바로 세계라고 설파한 서양 철학자 하이
            데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수직적 관계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

            하였다. 그에 따르면, (그의 용어들은 아니지만) 대타적 관계도 있고, 대자적

            관계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와의 관계”는 모두 대타적 관계이다. 예컨
            대 부모와의 관계는 대타적 관계인데,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관계란 인식
            적 관계가 아니라 존재적 관계이다. 다시 말해, 나는 부모를 어떻게 인식

            하고 있는가 하는 관계가 아니라 나는 부모에 대해 어떤 태도로 어떻게 존

            재하고 있는가 하는 관계이다. 나는 형제에 대해 이런 태도로 존재할 수도
            있고, 저런 태도로 존재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존재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리도 할 수 있고 저리도 할 수 있는 존재관계”이므로, 이를 하이데거는

            “존재가능Seinkönnen, the potentiality-for-Being”이라고 부른다. 모든 대타

            적 관계는 결국 존재가능이라는 것이다. 존재가능으로서의 대타적 관계는
            식물은 몰라도 동물에게서는 성립할 것이다.



              3. 그런데 인간은 대자적 관계도 갖고 있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에 대

            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기관계 역시 인식적 관계가 아니라 존
            재적 관계이자 존재가능이고, 여기서의 ‘자기’도 추상적 자아가 아니라, 우
            선은 위에서 말한 대타적 존재가능이다. 대타적 관계가 이러저러할 수 있

            는 존재가능이듯이, 대자적 관계도 이러저러할 수 있는 존재가능이다. ‘나

            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너는 2중적 존재가능’이라는 것이
            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너는 2중적 존재가
            능을 각각 선택적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

            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인간인 한에서는 달리 어쩔 수 없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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