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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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을 떠난 깨끗한 지견을 얻지는 못한다.” 52)
공삼매를 증득하면 마음이 즐겁고 깨끗해지지만, ‘교만을 떠난 지견’을
얻지는 못한다. 무상삼매·무소유삼매도 마찬가지로 ‘교만을 떠난 지견’을
깨닫지는 못한다. 무아·무아소無我·無我所[내가 없고 나의 것도 없다]삼매를
얻어야만 ‘교만을 떠난 깨끗한 지견知見’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오온의 무
상無常을 증득하는 공삼매, 색·성·향·미·촉·법 등 육경六境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무상삼매, 탐·진·치 등 삼독을 완전히 떨쳐버린
무소유삼매, 나아가 인식작용의 무상을 통해 ‘나’와 ‘내 것’이 없음을 증득
하는 무아·무아소삼매 등은 사실 무상·고·무아를 깨닫는 것에 다름 아
니다. 이 모든 것의 토대가 공삼매를 증득하는 것이다. 공이 수행에서 대
단히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잡아함경』이 말하는 공삼매는 ‘오온의 무상을
증득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행·주·좌·와 즉 수행의 모든 과정에서 ‘나
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마침내는 ‘계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집착을 없애는 것’에까지 나아간다.
공삼매·무상삼매·무소유삼매는 나중에 공삼매·무상삼매·무원無
願삼매[삼해탈문. 삼삼매]로 변한다. 무소유 대신 무원삼매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세간의 일체 유위법에 집착하는 것은 괴로움에 연결된다. 유위
법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고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것’, 즉
‘후유後有가 없음을 증득하는 것’은 초기불교 당시 모든 수행자들의 목표였
52) “若比丘於空閑處、樹下坐, 善觀色無常、磨滅、離欲之法. 如是觀察受、想、行、識, 無常、磨滅、離欲之法. 觀
察彼陰無常、磨滅、不堅固、變易法, 心樂、清淨、解脫, 是名為空. 如是觀者, 亦不能離慢、知見清淨.” T.2-
p.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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