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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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적으로 말해 『대명도경』의 번역은 오나

                라 손권의 황무黃武에서 건흥建興에 이르
                는 연간(222~252)에 이뤄진 것이다. 실제

                로 그는 적오赤烏 4년(241) 당시 이미 산속
                에 은거했기에, 그가 활동한 것이나 『대명

                도경』을 다시 번역한 것은 당연히 은거 전
                에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번역한 시간은

                마땅히 222년에서 241년 사이이다. 이 시
                기보다 약간 뒤가 바로 하안과 왕필이 현                         탕이졔가 펴낸
                                                             『곽상과 위진현학』.
                학을 제창한 때이다. 하안과 왕필 두 사람
                은 모두 정시 10년(249)에 죽었는데, 정시正始는 조비가 세운 위

                나라의 연호이며, 240부터 249년까지이다. 그들의 학풍을 흔
                히들 ‘정시의 학풍[정시지풍正始之風]’이라 부른다. 지겸이 번역한

                『대명도경』이 비록 강남에서 이뤄졌지만, 낙양 일대에서도 강
                의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야사상과 현학사상이 교류

                하고, 현학이 반야사상의 영향을 받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
                은 아니었다. (교류나 영향이 있었다는) 이 점을 우리는 현학사상

                                                18)
                자체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뤼청의 이런 주장과 달리 현대 중국의 대표하는 불교학자인 탕용통은
            『조론』을 현학으로 분류한다. 펑유란 또한 승조를 현학자로 파악한다. 승







            18)  呂澄著, 『中國佛學源流略講』, 北京:中華書局, 1979, p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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