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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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듣지 못했다.’ 는 자공의 말에 근
                                 거해, 비록 유교의 여섯 경전[육적六籍]이
                                 지금 전하고 있지만 진실로 성인이 남긴

                                 핵심이 아닌 껍데기[비강粃糠]일 따름이라
                                 고 여겼다. 이에 대해 둘째 형인 순오荀

                                   11)
                                 俣 가 ‘『주역』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성인
                                 이 괘상卦象을 세워 생각을 나타내고, 말

                                 [繫辭]을 붙여 자기의 할 말씀을 다했다」           12)
                                 고 했는데, 깊은 의미가 담긴 말씀[미언微
             예문서원에서 출판된
             『도가철학과 위진현학』.
                                 言]을 어찌 들을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순찬이 ‘무릇 이치의 현묘함은 사물의 모

                습으로 드러낼 수 없다. 지금 「괘상을 세워 생각을 나타냈다」는
                말은 괘상 밖에 있는 의미까지 통달했다는 것은 아니며, 「말[繫

                辭]을 붙여 자기의 할 말씀을 다했다」는 말은 계사 밖에 있는
                말까지 다 했다는 것은 아니다. 괘상 밖의 의미[의意]와 계사 이

                외의 말[언言]은 진실로 감춰져 있어 드러나지 않는다.’고 답변
                했다. 당시 말을 잘하는 사람도 철리哲理를 논할 때 순찬을 굴

                                13)
                복시킬 수 없었다.”  (강조는 필자)









           10)  이 말은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11)  순욱은 모두 다섯 아들을 두었다. 순운荀惲, 순오荀俣, 순선荀詵, 순의荀顗, 순찬荀粲이 그들이다.
           12)  이 말은 『주역』 「계사 상上」에 있다.


           13)  陳壽撰·裵松之注, 『三國志』(簡體字本前四史), 北京:中華書局, 2007重印,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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