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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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본래 현학을 공부하지 않았는데, 그 때부터 『노자』의 내용을
5)
토론함에 대단한 성취가 있었다.” (강조는 필자)
인용문에서 보듯이 ‘위진 현학’은 노장철학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당
시 사람들은 이 사조思潮를 ‘현종玄宗’, ‘현허玄虛의 학문’, ‘현원지담玄遠之談’
등으로 불렀다. 이런 담론談論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명사名士, 명달明達 등
으로 지칭했다. 남조 양梁나라 때부터 수隋나라까지 살았던 안지추(顔之推.
531∼591)가 지은 『안씨가훈』 권제3 「면학勉學」편에 현학과 관련된 주목할
만한 기록이 있다.
“『노자』·『장자』는 대체로 참[眞]을 온전히 보존하고 근본 성품
을 기르며, 외물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싫어하는 내용들이
다. …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은 이런 현학을 ‘근본적인 가르침[玄
宗]’으로 삼아 이어가며 서로 과장하고 숭상했으며, ‘경치에 붙
은 형체와 풀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景附草靡]’을 대하듯이 했
다. 신농神濃씨와 황제黃帝의 교화가 모두 자신의 몸에 있다고
여겼으며,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버렸다. 그런데 하
안은 조상曹爽과 무리를 짓다 (사마의에게) 살해 됐으니 이는 권
세의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이다. 왕필은 남 비웃기를 잘해 사람
들이 그를 질시했으니 이는 남 이기기를 좋아하는 함정에 빠진
5) [唐]方玄齡等撰, 『晉書』 卷54 「陸雲傳」, 北京:中華書局, 1999, p.983. 『고경』 제64호(2018년 8월호)
pp.42~4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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