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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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辯差 第九. [34][9] 변차 제구.
[35][무명 5] ① 無名曰: 然究竟之道, 理無差也. 《法華經》云: “第一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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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無有兩正, 吾以方便, 爲怠慢者, 於一乘道, 分別說三.” 三車出火宅,
卽其事也. 以俱出生死, 故同稱無爲. 所乘不一, 故有三名. 統其會歸, 一而
已矣. 而難云“三乘之道, 皆因無爲而有差別.” 此以人三, 三於無爲, 非無爲
有三也. ② 故《放光》云: “涅槃有差別耶? 答曰: 無差別.” 但如來結習都盡,
聲聞結習不盡耳. 請以近喩, 以況遠旨. 如人斬木, 去尺無尺, 去寸無寸. 脩
短在於尺寸, 不在無也. 夫以群生萬端, 識根不一, 智鑒有淺深, 德行有厚
薄, 所以俱之彼岸, 而升降不同. 彼岸豈異, 異自我耳. 然則衆經殊辯, 其致
不乖.
[35][무명 5] ① 무명이 말 한다: 궁극의 가르침에서는 이치상 차이가
없다. 『법화경』은 “최상의 가르침에 두 가지 최상승은 없다. 내가 방편으
로 태만히 수행 사람들을 위해 일승의 가르침을 나누어 셋으로 설명했
다.”라고 말했다. 세 마차가 불타는 집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일이다.
함께 삶과 죽음을 벗어났기에 동일하게 무위법이라 부른다. 타는 것이 같
지 않기에 세 가지 이름이 있다. 회통하여 귀결됨을 총괄하면 하나가 있
을 뿐이다. 그런데 대론자(유명)는 “삼승의 가르침이 모두 무위법에 의지
해 차별이 있다.”고 말했다. 이 세 사람은 무위에서 셋이지, 무위법이 셋
있는 것은 아니다. ② 그래서 『방광반야경』은 “열반에 차별이 있습니까?
44) 변차辨差에서 변辨은 변별하다, 차差는 차별을 말한다. 따라서 변차는 차별을 변별하다는 의미로, 바
로 앞의 ‘난차 제8’에서 유명有名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구체적으로 성문·연각·보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45) 『묘법연화경』 「방편품」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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