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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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묻노니 나와 무위는 같은가 다른가? 만약 내가 바로 무위라면 무위

           가 바로 나이다. (그러면) “무위는 차이가 없으나 다름은 나 자신이다.”라
           고 말 할 수 없다. 만약 나와 무위가 다르면 나는 무위가 아니고, 무위는

           무위 자신이고, 나는 항상 유위이다. 유위와 무위가 그윽하게 계합한다는
           이치가 걸려서 통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즉 나와 무위가 동일하다면 셋

           이 아니며, 다르다면 셋이 없다. 성문  연각  보살의 이름은 무슨 연유로
           만들어진 것인가?
                         47)
             [38][11] 會異  第十一. [38][11] 회이 제십일.
                                                    49)
                                         48)
             [39][무명 6] ① 無名曰: 夫止此 而此, 適彼 而彼. 所以同於得者, 得
                                    50)
           亦得之; 同於失者, 失亦失之.  我適無爲, 我卽無爲. 無爲雖一, 何乖不一
           耶? 譬猶三鳥出網, 同適無患之域. 無患雖同, 而鳥鳥各異. 不可以鳥鳥各

           異, 謂無患亦異. 又不可以無患旣一, 而一於衆鳥也. 然則鳥卽無患, 無患
           卽鳥. 無患豈異, 異自鳥耳. 如是三乘衆生, 俱越妄想之樊, 同適無爲之境.

           ② 無爲雖同, 而乘乘各異. 不可以乘乘各異, 謂無爲亦異. 又不可以無爲旣
           一, 而一於三乘也. 然則我卽無爲, 無爲卽我. 無爲豈異, 異自我耳. 所以無

           患雖同, 而升虛有遠近; 無爲雖一, 而幽鑒有淺深. 無爲卽乘也, 乘卽無爲






           47)  ‘회이會異’는 회통會通과 같은 의미다. ‘책이 제10’에서 유명은 삼승의 구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무명은 삼승의 구분은 있으나 종국에는 모두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다름
              을 회통한다는 뜻의 ‘회이會異’를 사용한 것이다.
           48) 차此는 차안此岸이다.
           49) 피彼는 피안彼岸이다.
           50)  이 구절과 비슷한 내용이 『노자』 제23장에 나온다. “故從事於道者, 同於道; 德者, 同於德; 失者, 同

              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道亦樂得之; 同於失者, 失亦樂得之.[따라서 도에 종사하는
              자는 그 도와 같아지고, 덕에 종사하는 자는 그 덕과 같아지며, 잃음을 좇아 행하는 자는 잃음과 같
              아진다. 도와 같이 하는 자는 도 역시 그런 자를 얻는 것을 즐거워할 것이며, 덕에 같이 하는 자는
              덕 역시 그런 자를 얻는 것을 즐거워 할 것이며, 잃음에 같이 하는 자는 잃음 역시 그런 자를 얻는
              것을 즐거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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