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4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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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인가? 대답 한다: 아니다. 있음과 없음을 떠나 얻는 것인가? 대
답 한다: 아니다. 그러면 얻는 것이 없는가? 대답 한다: 아니다. 왜 그러
한가? 대답 한다: 얻음이 없기에 얻는다, 그래서 얻음이 없음을 증득한
다.”라고 말했다. 얻음이 없는 것을 일러 증득證得이라 하는데, 누구 홀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⑤ 그러한 즉 현묘한 열반은 형상이 없는 곳에 있
기에 얻지 못함으로 얻는다. 반야지혜는 사물을 벗어난 곳에 있기에 그릇
되게 집착하지 않은 지혜로 안다. 큰 형상은 모습이 없기에 ‘보지 않음’으
로 본다.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 소리에 묻혀 있기에 ‘듣지 않음’으로 듣
는다. 그래서 열반은 옛날과 지금을 포괄하고, 모든 중생들을 인도하며,
창생을 양육하고, 성긴 것 같으나 (어는 것 하나) 새도록 놔두지 않는다. 넓
은 강을 가득 채우고 넘실넘실 거침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왕성하고 바다
처럼 넓도다! 열반이여! 그 어떤 수행도 반드시 열반을 거치지 않음이 없
도다[중생도 성인도 반드시 열반을 경유한다]! ⑥ 그래서 외도 수행자가
“부처님 가르침을 들으니 그 의미가 매우 넓고 깊으며, 넓고 넓어 끝이
없도다. 이루지 못함이 없고, 제도하지 못할 중생이 없도다!”라고 말했
다. 이리하여 성문 연각 보살의 길을 열었고, 진리와 거짓의 길을 논변
論辯했으며, 이름도 형상도 없는 이치를 드러냈다.
활인검 2012년 6월 북경대 철학과에서 북송 선학사상 연구로 철학박사학위 취득. 2018년 6월 중앙
민족대 티벳학연구원에서 티벳불교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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