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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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소리가 없다. (열반의 모습은) 적막하고 텅 비어 얻을 것이 없고, (열반의

            신묘한 본체는 항상 존재하기에) 없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③ 경전은 “열반의
            본체는 태어남과 사라짐을 벗어났기에 중생처럼 생멸生滅이 없고, 중생은

            본래 공적空寂한 존재이기에 중생과 열반이 다른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
            다. 유마힐은 “만약 미륵보살이 열반을 증득하면 모든 중생들도 열반을

            증득한다. 왜 그런가? 일체 중생의 본성은 항상 공적空寂해 더 이상 소멸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소멸될 것이 없는 데’ 있으므로 멸

            도滅度라고 부른다. 그러한 즉 중생은 본래 중생이 아닌데 누가 열반을 증
            득한단 말인가? 열반은 열반이 아닌데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가?

              [56] ④ 《放光》云: “菩提從有得耶? 答曰: 不也. 從無得耶? 答曰: 不也.
            從有無得耶? 答曰: 不也. 離有無得耶? 答曰: 不也. 然則都無得耶? 答曰:
                                                              119)
            不也. 是義云何? 答曰: 無所得故爲得也. 是故得無所得也.”  無所得謂之
            得者, 誰獨不然耶? ⑤ 然則玄道在於絶域, 故不得以得之. 妙智存乎物外,

            故不知以知之. 大象隱於無形, 故不見以見之. 大音匿於希聲, 故不聞以聞
                                         120)
            之. 故能囊括終古, 導達群方, 亭毒 蒼生, 疎而不漏. 汪哉洋哉, 何莫由之
            哉! ⑥ 故梵志曰: “吾聞佛道, 厥義弘深, 汪洋無涯, 靡不成就, 靡不度生.”
            然則三乘之路開, 眞僞之途辯, 賢聖之道存, 無名之致顯矣.

              [56] ④ 『방광반야경』은 “깨달음은 있음에서 얻는 것인가? 대답 한다:
            아니다. 없음에서 얻는 것인가? 대답 한다: 아니다. 있음과 없음에서 얻








            119)  『방광반야경』 「구화품漚和品」에 나오는 구절이다. 구화漚和는 범어 upāya를 음역音譯한 말로 ‘방편方
               便’이라는 의미다. 본문의 인용문과 원문의 글자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120)  정독亭毒은 ‘기르다, 양육하다’는 의미다. 『노자』 제51장에 나오는 말이다. “亭之毒之[이루어주고 익

               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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