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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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나식과 또 다른 이름인 ‘염오식染汚識’은 지난 호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지난 호에서 사량식은 설명했지만, 새롭게 추가할
내용이 있어, 다시 한 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더불어 말나식의 또 다른 명
칭인 ‘사량식思量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8년간의 인도 유학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 온 현장 스님이 유식학 즉
법상종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을 한역했습니다만, 현장 스님의 제자인
1)
규기 스님 이 『성유식론』 10권의 문장이 광대하고 의미가 깊은 것을 보고
서, 다시 현장 스님에게 『성유식론』의 핵심을 간추려 줄 것을 청원하였습
니다. 그래서 다시 현장 스님은 7언 절구의 12구로 된 매우 짧은 게송으
로 『팔식규구』를 작성하였습니다. 그 게송 중에 말나식을 설명하는 부분
이 있는데,
1) 규기(窺基, 632~682)는 유식학파, 즉 중국 법상종의 개창자이다. 그는 줄여서 기基 또는 자은사에 거주
하였기에 자은대사慈恩大師라고 불린다. 당나라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 출신으로 속성은 위지尉遲이고 자
는 홍도洪道이다. 그의 조상은 한족이 아니라 위구르족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고승전』 제4권
「당경조대자은사규기전唐京兆大慈恩寺窺基傳」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632년에 태어나 17
세에 출가하여 현장의 제자가 되었다. 23세에 자은사慈恩寺로 이주하여 현장에게 범어와 불교 경론을
배웠고, 25세 이후로는 역경에 참여했다. 659년 현장이 유식 논서를 번역할 때 규기는 신방神昉, 가상
嘉尙, 보광普光 세 사람과 함께 검문檢文, 찬의纂義 등을 담당했지만, 『성유식론』의 완성에 있어서는 단
지 규기만이 참여했다. 그리고 661년 현장이 유식의 중요한 논서인 『변중변론辯中邊論』, 『변중변론송
辯中邊論頌』, 『이십유식론二十唯識論』 등을 번역할 때도 대부분 규기가 받아쓰는 일을 했고, 또 그에 대한
소[술기]를 직접 지었다. 이후에도 규기는 현장 유식설의 바른 뜻을 전수하다가, 682년 11월13일 자은
사에서 입적하여, 그의 스승 현장 곁에 묻혀있다. 그는 후대에 ‘백본의 소주[百本疏主]’라고 불리듯 새로
유입된 수많은 불교 경론을 번역하고 주석하는 일에 자신의 온 지성을 쏟아 부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은 스승인 현장과 함께 인도의 여러 유식학설을 한데 모아 집대성한 『성유식론成唯識論』과 그가 직
접 쓴 주석서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이다. 이 논서와 그 주석서들에서부터 중국의 새로운 유식학
즉 법상종法相宗이 시작되었기에 그를 법상종의 개창자라고 한다.”(백진순, 불교신문) 또한 논리학 주석
서 『인명입정리론소因明入正理論疏』와 『성유식론』 주석서인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 등이 있다.
특히 그는 『해심밀경』에 근거하여 삼륜전법설三輪傳法說로써 부처님의 설법을 3단계로 나누었다. 최초
법륜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 제2 법륜은 반야경전과 중관파, 제3 법륜은 유식의 가르침으로 구분하
여, 유식을 부처님의 최고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은 종파불교가 꽃을 피운 중국인들의 독
특한 사고방식이다. 이것을 보통은 ‘삼시교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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