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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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심도 아니다[비항비심 非恒非審]. <왜냐하면 전오식은 단절이 있

                을 뿐만 아니라 집요하게> 자아를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
                직 말나식만이 항도 있고 심도 있다[역항역심亦恒亦審]. <왜냐하면

                말나식은 언제나 집요하게> 자아를 집착할 뿐만 아니라, 끊임
                없이 지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유정[중생]의 생사

                는 길고 어둡다.”



            라고 했습니다. 즉 오직 말나식만이 자기 자신을 언제나[항恒] 집요하고 세
            심하게[심審] 사량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중생은 밤낮으

            로 생사를 헤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나식을 오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
            하는 마음, 즉 사량식思量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한 구절은 감산 스님이 말나식에 대한 특징을 잘 설명한
            주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철 스님께서도 ‘감산 스님은 선종과 교종

            에 해통한 명나라 말기의 거장巨丈이다.’고 하시면서 “감산 스님 같은 분
            들은 만고의 표본이 될 선지식이다. 이런 분들의 간절한 경책의 말씀을

            귀감으로 삼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르겠다는 것인가?”(『백일
            법문(중)』, p.234)라고 하여 감산 스님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성철 스님도 자신의 깨달으신 경계를 감산 스님을 의지처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말나식의 또 다른 명칭인 전송식轉送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중간에서 두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 즉 매개하는 사람은 중요합니다. 경제학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모
            든 일에는 물건을 생산하는 생산자와 물건을 소비하는 소비자 사이에 중

            개자[상인 등]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자와 소비자도 중요하지만, 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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