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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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심사량아상수恒審思量我相隨 유정일야진혼미有情日夜鎮昏迷
(<말나식은> 언제나[恒] 세심하고 집요하게[審] 사량하여[思量] 아상에 따른다
[집착한다]. <그리하여> 유정[중생]은 언제나[鎮] 밤낮으로 혼미하다).”
2)
라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명나라 시대 감산 스님 이 『팔식규구』에 대한
『팔식규구통설』이라는 주석서를 남겼는데, 위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
하고 있습니다.
“아뢰야식은 항(恒, 언제나, 항상)이지만 심(審, 매사에 집요하다)은
아니다[항이비심恒而非審]. <왜냐하면 아뢰야식은> 자아에 <집요
하게> 집착하지 않지만, <언제나 작용하여> 끊어짐[간단間斷] 없
기 때문이다. 의식은 심이지만 항은 아니다[심이비항審而非恒]. <왜
냐하면 의식은> 자아에 <집요하게> 집착하지만, <기절하거나
깊은 수면에 빠지면> 끊어지기 때문이다. 전오식은 항도 아니
2) 감산 덕청(憨山德清, 1546~1622)은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금릉金陵출신이며, 속성은 채蔡이고 이름은 덕청이
며 자는 징인澄印이다. 일반적으로는 감산대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1세에 출가하여 무극無極에게
서 화엄종을 배운 화엄학자이나 오대산과 감산에서 선법을 닦아 화엄과 선의 융합을 주장하였다. 그
는 주굉(袾宏, 1536~1615)·진가(眞可, 1543~1603)·지욱(智旭, 1596~1655)과 더불어 명나라시대의 사대고승
四大高僧 중의 한 명이다. 특히 지욱은 그의 손 상좌이다. 지욱 대사도 『팔식규구』에 대한 주서서인 『팔
식규구직해』를 남겼다. 또한 그의 나이 50세에 혜능 스님이 활동한 조계산에 유배되어, 혜능 스님의
유적지를 복원하였으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대부의 존경을 받았다. 한때는 여산에
도 주석하였지만, 다시 조계산에 돌아와 76세로 입적한다. 감산대사는 많은 주석서를 남겼는데, 그
의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화엄경』, 『법화경』, 『능엄경』, 『금강경』, 『능가경』, 『원각경』, 『대승기신론』 등
이 그것이다. 또한 유교·불교·도교의 3교의 조화를 추구한 저서들도 있는데, 『중용직지中庸直指』·
『노자해老子解』·『장자내편주莊子內篇註』 등이 그것이다. 특히 현장의 저작인 『팔식규구』에 대한 주석서
인 『팔식규구통설』, 유식의 심소법을 설명한 세친 보살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名門論』의 주석서인
『백법명문론논의百法名門論論議』를 지었으며, 또한 승조의 『조론』에 대한 주석서인 『조론약주』을 지어 중
관사상과 유식사상이 중국불교의 토대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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