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19년 6월호 Vol.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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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한다. 연호로 말하면 다이쇼大正 말기로부터 쇼와昭和 초기에 걸쳐 일
어난 소위 ‘전전戰前의 논쟁’이다. 학자라 해도 불교학자 뿐만 아니라 와
츠지 데츠로와 같은 당시 최첨단의 서양철학, 예를 들면 현상학 등을 완
전히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윤리학적, 문화사적인 관심으로
부터 불교연구에 뛰어든 인물도 가담했다. 와츠지 데츠로는 『고사순례古
寺巡禮』나 『일본정신사연구日本精神史硏究』에서도 그 이름을 날려,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올라운더로서 일반인들에게도 인지된 인물로서, 그 영향
권은 학계에 국한되지 않고, 문단이나 예술계에도 미치고 있었다. 다니자
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아베
지로阿部次郞 등의 화려한 인맥들이 받드는 지知의 슈퍼스타였다.
와츠지는 1889년 희메지姬路 근교의 농촌 도호리촌砥堀村 니부노仁豊野
에서 태어났다. 가업은 마을의사였다. 제일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제국대
학 문과대학 철학과에 진학하고,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의 지도를
받았지만, 이노우에와는 전혀 그 성향이 맞지 않았다. 또 다니자키 준이
치로, 아시다 히토시芦田均 과 함께 동인지, 제2차 「신사조新思潮」에 참가,
문학에도 뜻을 펼쳤다. 이노우에와는 맞지 않았지만, 메이지정부의 ‘고
용외국인’으로서 도쿄제국대학에서 서양의 철학과 고전학, 미학 등을 강
의하고 있었던 라파엘 폰 괴벨에게 크게 감화를 받았다. 괴벨이 직접 읽
을 수 있도록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제목으로 한 졸업논문을 일부러
영어로 쓴 것에서도 그 영향은 엿볼 수 있다. 그 다음해 1913년 와츠지는
『니체연구』를 완성한다. 약관 24세의 처녀작이었다.
논쟁의 중심이 된 책인 『원시불교의 실천철학』이 이와나미岩波서점으
로부터 간행된 것은 그로부터 14년 후인 1927년이다. 이 사이에 와츠지
는 『우상재흥偶像再興』과 『고사순례』 등 지금도 계속 읽혀지고 있는 문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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