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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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림 스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산문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걸쳤다 해서 수행자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은 수행자라고 피해 가는 법이 없다. 절간의 소머슴으
로 들어가 철부지 행자로 살았던 오현 스님은 이후 만행을 나섰다가 우연
히 문둥이 부부를 만나고 그들과 다리 밑에서 한 철을 보낸 뒤 비로소 발
심출가 한다. 또 유년 시절 문학과 산사를 동경했던 청화 스님은 출가하
겠다는 일념으로 상경했다가 막상 행자생활에 회의가 들자 절을 나와 자
살을 시도한다. 이때의 경험은 스물한 살에 다시 정식 출가하는 데 단단
한 디딤돌이 된다. 어린 나이에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절에 맡겨지며 머리
를 깎은 원경 스님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울분을 토하며 전국을 유랑하
다 기나긴 방황을 접고 스스로 절을 찾아가 정식으로 출가한다.
혼돈과 방황의 시간을 딛고 출가 수행자로 다시 서기까지 스님들이 보
여준 파격과 기행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23인의 스님이 제각각 걸어온 행적을 되짚어가며 삶에 대한 통찰
과 깨달음을 전한다. 발심출가든 인연출가든 스님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다. 고집스럽게 욕망에 집착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욕망과 두
려움을 내려놓고 평온할 것인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23인의 스님은 크게 버림으로써 크게
얻었으며, 떨쳐버림으로써 새로이 피어난 이들이다. 모든 존재가 덧없이
흘러가는 세상에서 이제껏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허망함을 느낀다면,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영혼의 스승을 찾는다면, 이 책이 저마다 찾고 있
는 답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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