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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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에 걸친 윤회의 양상을 설하는 것이 처음부터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
다라고 하는 주장에 관한 한, 나도 우이, 와츠지 양씨의 주장에 찬성한
다”라고 표명하며(「원시불교에 있어 연기관의 전개 ―(특히 赤沼, 宇井, 和辻 諸敎授
의 설을 읽고) ― 상 『원시불교사상론原始佛敎思想論』 더욱이 「원시불교에 있
어 연기관의 전개」는 이하 「연기관의 전개」로 약기), 또 “불타는 어디까지
나 현실존중주의자로서 해탈도 열반도 ‘현법에 있어 증지證知하고 실현
해 나간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던 것이기 때문에, 후세와 같이 삼세
에 걸친 윤회론 자체의 설명에 힘을 다하지 않았던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는 유보를 붙이고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연기관의 전개」하
『원시불교사상론』)
[p.101-2] 좀 더 부언하면 제1차
아카누마 치젠의 ‘전통설’
연기논쟁에서 기무라보다도 전통교
리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윤회를 전제로 한 연기설을 주장했다고 하는
아카누마조차 윤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윤회에 관해서는 잡니가야雜尼柯耶 15·1-20에 갖가지 기사
가 있지만, 모두 다 ‘생사에 시작이 없고 고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고뇌를 통
감하는 것에 구원의 과거가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근거가 있
고, 또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인생을 믿고, 인생에 대하여 적
극적 태도를 취하는 것의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
서 윤회의 무궁함을 말하는 것은 의의가 있지만, 그것이 객관
적 사실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석존의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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