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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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지옥의 귀신은 인간과 같이 오온소생五蘊所生이거
나 혹은 명색이라고 해도 지장은 없다. 그러나 그런 까닭에 또
그것은 무명의 입장에 있어서만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업
에 의한 윤회전생은 윤회의 주체인 아我가 현실적인 것과 같이
현실적이며, 아가 없는 것과 같이 무인 것이다. 따라서 무아의
입장에 있어서는 윤회는 없다. 무아의 진리가 체현되면 윤회
는 소멸한다.”(「원시불교의 실천철학」 이하 「실천철학」으로 약기. 「제3장
도제 제4절」 『和辻哲郞全集 第5卷』 所收 岩波書店)
‘오온소생’이란 오온에 의해 생긴 것이란 정도의 의미이다. 오다니 노
부치요小谷信千代는, 와츠지 데츠로의 연기관을 비판하는 논문의 앞부분에
서, “‘미혹한 자에게는 윤회가 있고, 미혹을 떠난 자에게는 윤회는 없다’라
는 것이 불교의 입장 즉 석존의 가르침이다”라고 하는 사쿠라베 하지메櫻
部建의 견해를 인용하여 “연기설을 윤회설과 분리시켜, 윤회설을 석존의
불교로부터 배제하여, 그 영향을 오늘날까지 미치게 한 것은” 와츠지의
「실천철학」이라고 단정하고 있다.(「와츠지박사의 연기설이해를 묻다 ―석존의 윤
회설과 연기설―」 『佛敎學セミナー』 제76호) 하지만 이 이해는 옳치 않다. 실로
지금 인용한 이 곳에서, 와츠지는 “미혹한 자에게는 윤회는 있고, 미혹
을 떠난 자에게는 윤회는 없다”는 것을 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철학자인 마츠오 노부아키松尾宣昭는 이 구절을 “기무라가 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라고 비평하고 있다(「윤회전생고」(1) 『龍谷大學論集』 第469
号). 와츠지는 분명히 세속에 있어서 범부, 미혹한 자의 경험세계에는 윤
회는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아의 진리를 ‘체현’한 자에게
는 윤회는 없다. 이 구절로부터 와츠지가 모순을 제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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