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9년 7월호 Vol.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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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많은 단계의 인고忍苦 과정을 통해 계위階位를 높여 가듯이 서암언 선
사는 자신을 철저히 담금질했던 모양이다. 선禪에서는 ‘소’를 수행의 표본
으로 삼는다. ‘심우도尋牛圖’가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소는 천천히 걸어도
천 리 만 리를 갈 수 있으나 호랑이는 빨리 달리는 재주는 출중해도 천 리
만 리를 가지 못한다. 재빠르고 약은 이들은 호랑이처럼 속도감 있게 사냥
하는 듯하나 지구력이 떨어져 실패확률이 높다. 그래서 자신의 재주를 과
신한 이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서암언 화상과 비슷한 예는 부처님 재세在世 당시 ‘주리반특가’라는 제
자에게도 찾을 수 있다. 주리반특가는 수행자들 사이에서 ‘멍청이’로 통했
다. 아마 지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던 모양이다. 이런 주리
반특가는 그래서 번번이 다른 수행자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다. 어느 날 부
처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놀림을 당하고 있는 주리반특가에게 ‘쓸고 닦
아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주리반특가는 마당을 쓸고 신을 닦고 밥을 먹으
며 늘 ‘쓸고 닦아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웠다. 그리곤 마침내 주리반특
가는 깨달았다. 쓸고 닦는 것이 마음에 있다는 뜻을 알게 된 주리반특가는
그간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에서 단박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당당히 지
덕知德과 혜안慧眼을 갖춘 아라한의 경지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선지식으로
자리했다.
서암언 화상도 매일매일 밥을 먹거나 청소하거나 앉으나 서나 스스로
‘주인공아!’ 하고 부르곤 스스로 ‘네!’ 하고 답했다고 한다. 여기서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다. 늘 점검하고 챙겨야 할 대상이다. 언젠가 부처가 돼야
할 미완의 여래다. 이 주인공 화두는 서암언 화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서암언 화상은 대중들을 제접提接할 때도 항상 이 주인공 화두를 들어 가
르침을 폈다. 그 출처는 『선문염송설화』 제988칙에 나온다. 현사사비(玄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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