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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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 복류수伏流水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사상이나 자이나교의 철저한 불살생계는 아힘사
            [불해]의 마음작용[심소]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자이나교도는 출가자와 재가자에게도 철저하게 ‘아힘사’의 실
            천을 요구합니다. 재가신자에게는 농사는 못하게 하고 상업에만 종사하

            도록 하는데, 곡식을 뿌리기 위해 땅을 쟁기로 파면 자연히 생물을 해치
            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식도 철저하게 금지할 뿐만 아니라 식물 중

            에서도 토마토 등의 열매만 먹게 합니다. 왜냐하면 뿌리에서 나는 식물을
            먹는 것은 생명을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불교는 동

            물의 살생[육식]은 금지합니다만, 식물은 윤회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금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불교의 육식금지나 자이나교의 불살생도 바

            로 아힘사를 바탕으로 성립한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유식의 논서에서는 불해[아힘사]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물론 조금 어려운 내용이 등장합니다만,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성유식론』에서는 불해에 대해 “모든 유정[중생]에 대해서 손해되
            고 괴롭게[손뇌損惱] 하지 않는 무진(無瞋. 분노하지 않음)을 본질적인 성질

            [본성]으로 하며, 해침[해害]을 능히 반대[대치]해서 불쌍히 여기는 것[비민
            悲愍, 연민]을 부수적인 성질[작용]로 한다.”라고 주석합니다.

              또한 현장(600~664) 스님의 저작인 『팔식규구』에 대해 주석한 감산
            (1368~1644) 스님의 『백법논의』에서는 “불해[아힘사]란 중생을 사랑하고 불

            쌍히 여겨 손해되고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불해]은 오로지 진[瞋, 분
            노]을 다스린다. 분노하지 않으면 밖으로 생물을 해치지 않으며, 안으로

            는 지혜로운 생명[지혜와 수행이 뛰어난 수행자]을 온전하게 <보호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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