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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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소리’가 부처의 법신이고 설법이 되는 도리도 바로 이것
이다. 선가禪家의 현성공안現成公案은 공空과 색色, 유有와 무無
양쪽 둘 다를 초월한 절대긍정의 존재론으로 두두물물의 실존
을 기꺼이 수용한 것이다.”(상권, p.51)
노장과 선불교가 서로 통하는 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러한 삶의 실존적 통찰이다. 도와 불법 진리는 어디에나 다 흩어져 있다.
선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공안들, ‘뜰 앞의 잣나무’, ‘간시궐(똥 젓는 마른 막
대기)’에서 엿볼 수 있듯 삼라만상 두두물물, 심지어 오줌·똥 속에도 진
리가 들어 있다는 것이 선과 노장의 공통된 진리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의 저자 이은윤 선생은 노장으로 선어록을 읽고, 선시禪詩의 세계 또한 노
장의 시선으로 읽는다. 평생을 갈고 닦은 언론인의 명쾌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는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허虛’는 불교의 공空·무심無心과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와도 같
은 의미로 통용된다. 선禪에서는 흔히 자성의 비유로 ‘허공’을
예시하고 노장에서는 ‘고요함[정靜]’에 허자를 덧붙여 ‘허정’이라
하여 강조의 의미를 더욱 강화시켜 주기도 한다. 무위는 바로
허다. 텅 빈 마음이 구현된 것이 ‘무위’인데 거울처럼 객관 사
물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와 넓은 도량을 뜻하기도 한다.
무위는 존재의 자유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인식이며 일종의 자
연사상이다. 선은 무위자연의 원시 체험을 통한 창의력과 상
상력을 증대시키는 데 모든 학습[수행修行]의 역점을 둔다. 깨달
음이란 이러한 창의력이 비등점에서 자연스럽게 폭발하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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