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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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그것은 통상의 ‘사고영역’도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무명과 동일하게 연결되는 무지란, 그것
들 전체를 지각할 수 없는 사태를 말하는 것이다.
뒤에서 말하지만, 이것은 와츠지의 논고에서 한
층 명확해진다. 뒤집어서 우이는 말한다.
우이 하쿠주.
“개념상 무명에는 활동성이 사상捨象되어 있
다. 고로 무명 그 자체로서는 활동성이 없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무명 그 자체로서는 본래 활동성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면, 학자가 때때로 무명을 세계 또는 인생의 창조
발전의 근본원리와 같이 해석하고, 따라서 12인연은 그 창조
발전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이것을 수론학파數論學
派의 전변설轉變說을 설하는 25제諦와 비교하거나 또는 25제의
영향에 의해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 설은 결코 승인할 수
없게 된다.”(방선 인용자, 「인연의 해석」)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전혀 승인할 수 없다고 부정되고 있
는 것은 기무라 타이켄의 설이다. 와츠지 테츠로는 “우이씨는 전혀 기무라
씨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라고 단정하고 있지만(「부록 기무라 타이켄씨의 비평
에 답함」 『和辻哲郞全集 第5卷』 所收), 이러한 한 구절을 덧붙이고 있는데서, 적
어도 기무라의 연기론이 우이의 뇌리에 있었던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글
속의 ‘수론학파’란 힌두교 정통 6파철학중의 하나인 상캬 학파, ‘25제’란 상
캬 학파에서 세계창출에 관한 24개의 실체(24제)에 순수정신인 푸루샤를
더한 것이다. 기무라가 「사실적 세계관」에서 12지 연기를 논할 때, 불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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